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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나의 이야기

나는 [더 글로리]가 불편하다 3

by 진실로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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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왜 도데체 왜.. '
 

믿기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겐 불행이 기가막히게 찾아왔다.

 

 강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왔을 때, 그는 나를 그냥 지나쳤다.

그 이후로, 몇번을 마추쳤어도 내 옆의 친구에게만 몇 마디 나누고 자연스레 지나갔다.

마치 내가 누군지 모르는 듯 해 보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나만 혼자서 예전의 기억들 속에서 마주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고,

쟤는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 가만히 앉아있을 뿐인데, 매 초마다 상처받는 듯이 속이 타들어 갔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가 나를 다시 5학년으로 만들었다.

 

 

"걔, 휴학했다던데?"

 

 

불행 중 다행히도, 그는 1학년 중 휴학했고 나는 대학생활 4년을 온전히 잘 다닐 수 있었다.

걔가 휴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걔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이 너무나 무너져 내려 내가 휴학을 했지 않았을까 싶다.

 

 

"안녕. 나 기억하니?"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20살이 되어서 만났다.

그 뒤로, 딱 한 번. 2년 전 카톡으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페이스북으로 들어가니 대학생 때 친구들이 보였다.

그때의 추억들을 보다가 그를 발견했고, 여전히 나는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2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더 이상 여기에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아서, 난 용기내어 메세지를 보냈다.

용서해보려고. 그리고 한켠에 남아있는 절망과 분노를 다 털어버리고 싶었다.

카톡으로 말하자고 하기에, 넘어왔고 대화는 이어졌다.

 

 

 "미안한데..누구더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고있지 않다는 것을.

대학생때 마주쳤을 때, 이미 느껴졌다. 모른체가 아니라 정말 모르는 것 같아 보였거든.

나는 내가 당했던 일과 함께 더 이상 힘들기 싫어서 연락했다고, 널 용서하고 싶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는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나니 참.. 허망했다.

나는 용서를 해보려고 어렵게 연락을 취했는데, 본인이 한 짓도 나에 대한 기억 조차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본인을 아냐고 묻는다.

어디 초등학교, 어디 대학교, 무슨 과, 같이 다니던 친구 이름까지 댔다. 걔는 안단다.

기억은 안나지만 본인이 그랬다면 초등학교때, 집에 안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을거라고 말한다.

나는 집에 행복한 일만 있어서 너에게 당했을까?

나 또한 불행했지만, 너처럼 행동하진 않았고 그건 변명이라고하니 변명이 맞단다.

기억은 안나지만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전화로 사과하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내 번호를 보내줬고 그렇게 기다렸다.

20년을 기다린 사과였다.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내일 사과하면 안될까?"

 

 

내 번호를 주고 난 뒤, 10분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톡을 보내니 머리가 아프다고 내일 사과할꺼라는 그였다.

그 순간, 이해가 됐다. 이런 애였지 참. 세월이 2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게 있나 보다.

지금까지는 잊고 지내서 몰랐다고 해도, 이제 알았는데도 이런 태도인게 환멸이 났다.

그 뒤로 톡을 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내일한다는 사과전화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다.

 

 

"오 멋있다!"

 

더 글로리가 유명해지자, 당연하듯 걔 생각이 났고, 인스타에 이름을 검색해봤다.

특이한 이름이라 상단에 떡하니 잘 나왔다.

최근 게시물을 보니, 다들 좋은 일 하는 모습 멋있다고 한다.

청소년을 유해환경에서 지도하고 단속하여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일이라고.

학교폭력 예방, 유해업소 실태파악, 유원지 순찰활동 등..을 하는 단체란다.

사과한다고 하더니, 머리아프다는 핑계로 내일 한다던 너가.

사과를 빌미로 번호를 요구해서 알려줫더니, 2년째 연락한 통 없는 너가.

인스타에서는 사람들에게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멋진사람이 되어있었다.

정작, 본인에게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소름이 돋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만은 너가, 하지말았어야 됐지 않았을까?

난 아직 이 아이를 증오하는게 분명한 순간이었다.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수가 없거든."

 

 

나는 지금도 증오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멈출수가 없는 증오를 갖고 살아간다는건.. 자신한테도 지옥이 된다는걸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멈출수가 없을 만큼, 커다란 상처와 깊은 분노가 자리잡아 있는 것일 테니까.

 

다 잊고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감정이 담긴 기억은 그 무엇보다 짙은 향기가 있다는 것을.

일상생활을 살아가더라도 문득, 스며든다. 이렇듯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몇 년 만에 꿈에 나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 기억속에서 당하는 괴롭힘의 이자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더 글로리'가 매체에 나올 때 마다, 나는 그 향기가 나날이 짙어진다.

학교폭력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 마다, 그 당시가 더욱 되뇌어 진다.

그 때의 감정, 그 때의 상황, 그 때의 나로 잠시 다녀온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이 메쓰껍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되뇌이고 싶지 않아.

내 인생 잘 살고 있었는데, 다시 내면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체의 모든 말들이, 다 모질다.

 

그래서 나는 '더 글로리'가 이토록 불편한 것일지, 모른다.

 

 

 

 

 

[Daily/나의 이야기] - 나는 [더 글로리]가 불편하다 1

 

나는 [더 글로리]가 불편하다 1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수가 없거든." 맞는 말이다. 멈출수가 없는 증오를 갖고 살아간다는건.. 자신한테도 지옥이 된다는걸 안다. 그럼에도 멈출수가 없을 만큼 커다란 상처와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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